“난 유럽에 갈 때마다 제임스 딘이 유럽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나 그의 얼굴을 본다. 샹젤리제 쇼윈도엔 지미(제임스) 딘과 마릴린 먼로, 험프리
보가트의 사진이 걸려있다. 스페인 남부의 디스코장에서도, 스웨덴의 레스토랑에서도, 모스크바 거리의 티셔츠에서도 지미 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유없는 반항’과 ‘에덴의 동쪽’에 제임스 딘과 함께 출연했으며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배우 데니스 호퍼의 회고담이다.
단 세 편의 영화를 남기고 24살에 세상을 버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미국의 대중문화 아이콘을 넘어서, 전세계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불멸의 스타이자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에 관해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나 보지 못한 영화, 스틸 사진이 있을까?
제임스 딘 사망 50주기를 기려 출시된 DVD ‘제임스 딘 컬렉션’은 제임스 딘에 관해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전한다.
SE(스페셜 에디션)로 출시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1955), ‘에덴의 동쪽’(East of
Eden·1955), ‘자이언트’(Giant·1956) DVD를 모두 보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새로운 정보가 많다. 7장의 디스크에
담긴 세 편의 영화와 방대한 서플먼트를 모두 보고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제임스 딘에 관한 열광과 연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며 21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며 공감가는 캐릭터를 연기한 제임스 딘을 시간날 때마다 만나는 것은 영화 팬의 기본 의무다.’
세 영화 모두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 출시되었기에 구부정하게 움츠린 어깨를 누르는 고독,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서 감지되는 마음의
혼란, 고개를 숙인 채 올려다보는 눈에 어린 슬픔과 동정, 우물거리며 안으로 삼키는 대사에 담긴 구애, 폭발적인 절규 속의 분노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유있는 반항아들 - 이유없는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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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없는 반항' |
니컬러스 레이 감독의
‘이유없는 반항’ 시나리오는 로버트 M 린더 박사의 불량 청소년 연구에서 출발했다. 10대의 반항이 빈민층 청소년만의 것이 아니라 중상류층
아이들에게도 널리 퍼져있다는 연구였다. 여기에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더해졌고 제임스 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의 연기력과 이미지에
힘입어 세월을 뛰어넘는 청춘영화가 탄생했다.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아버지(짐 벅스)에 대한 연민과 사춘기의 정서적 혼란으로 방황하는 짐(제임스 딘). 커버린 딸의 키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반발해 밖으로 나도는 주디(내털리 우드). 흑인 보모에게 아들을 맡기고 나몰라라 하는 부모로 인해 상처받은
플라토(살 미네오). 세 명의 상류층 가정 10대는 하루 동안 상실과 두려움과 위안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 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기억 속의 제임스 딘’(James Dean Remembered·1970)은 제임스 딘 사망 20년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제임스 딘에게 열광하는지를 차분하게, 때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TV프로다. 내털리 우드, 살 미네오 등 모든 출연진의
증언이 새롭고 진지하다. ‘에덴의 동쪽’의 음악 감독이자 제임스 딘의 룸 메이트였던 레오나르도 로젠만은 “제임스 딘이 동성애자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는 예술가, 지식인이 되고자 했다”고 단언한다.
여타의 다큐멘터리까지 종합해보면 제임스 딘의 성격은 모호하다. “상처받을까 두려워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며, 혼자 있기를 즐겼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장난을 즐기고, 유머 감각이 빼어나며,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이도 있다. 제임스 딘이 타고난 연기자에
노력파라는 점은 모두 동의하지만.
그림, 조각, 스포츠, 사진, 문학 작품에 조예가 깊었던 제임스 딘은 감독을 꿈꾸었을 만큼 야망도 능력도 많았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 떠들 때도 제임스 딘은 극중 인물에 몰입해 연습하곤 했다. “한 장면에 대여섯 개의 다른 연기를 선보이고,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을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왔다”는 감독들의 증언은 딘의 능력과 자유의지가 남달랐음을 증언한다.
다큐멘터리 ‘반항적인 결백한 사람들(Defiant
Innocents)’에서 시나리오 작가 스튜어트 스턴은 “어머니에게 쩔쩔맸던 아버지가 ‘내 인생은 모욕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회상한다.
이때 충격이 ‘이유없는 반항’에서 짐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투영되었음은 물론이다. 제임스 딘 역시, 9살에 어머니를 잃은 자신을 시골 친척에게
맡기고 재혼한 아버지에게로 향한 애증을 짐의 역할에 쏟아부었다.
불안한 청춘을 조명한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와일드 원’(The Wild One·1953)이 대표작으로, 검은 가죽점퍼 차림에
오토바이를 몰고 등장한 말론 브랜도는 제임스 딘의 우상이기도 했다. ‘이유없는 반항’과 ‘에덴의 동쪽’이 단순 반항의 불량 청소년 영화와는 다른
지위를 획득한 것은, 중상류층 가정과 청소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어루만져준 때문이다. 시대 변화와 세대 연구, 제작진과 출연진의 체험을
잘 반영하였기에 ‘이유없는 반항’과 ‘에덴의 동쪽’은 오늘날에도 추앙받는 청춘 영화가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 에덴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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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덴의 동쪽' |
일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은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존 스타인 벡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3분의 1, 아버지와
두 아들의 애증관계만 취한 것은, 일리아 카잔 감독이 극도로 사이가 나빴던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영화에 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
벡 역시 청춘기에는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반항아 칼 역의 제임스 딘, 꽉 막힌 도덕관념으로 아내와 칼을 숨막히게 하고, 결국은 두 사람을 밖으로 내모는
아버지 아담 역을 맡은 레이먼드 메시. 두 배우의 실제 성격이 극중 배역과 비슷함을 간파한 카잔 감독은, 딘에게 메시를 화나게 하도록 부추겼다.
딘의 예측할 수 없는 즉흥연기와 메시의 실제 분노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부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카잔은 제임스 딘의 불안정한 감정을 잘 이해하고, 또 이를 적절히 통제하고 이용했다. 무뚝뚝하며 자기 주장이 강한 딘을 보고
못마땅해했던 카잔은 딘이 전속력으로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뉴욕 구경을 한 뒤 비로소 딘을 좋아하게 되었다. 출연료 전부를 말 구입에 쓴 딘이
스튜디오에 말을 갖다놓고 넋을 잃고 돌보자 카잔 감독은 말을 내쫓고 연기에 몰입하게 하였다.
‘자이언트’의 감독 조지 스티븐스 역시 자동차 경주에 빠진 딘을 염려하여 ‘촬영 중에는 차를 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약속을
지킨 딘은 ‘자이언트’ 촬영이 끝나자마자, 은색 포르쉐 스파이더를 몰고 살리나스의 경주장으로 향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토바이와 말과
자동차는 딘의 수명을 재촉한 주범이지만 스티븐스 감독은 “딘의 출연 신을 잘라 딘을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팬들의 항의 서한을 받아야했다.
‘에덴의 동쪽’ DVD의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제임스 딘, 영원하리(Forever James Dean)’는 제임스 딘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출생, 성장에서부터 딘의 무대 출연작, TV 출연작까지 볼 수 있다. 또한 딘이 결혼하고
싶어했던 여배우 피어 안젤리와의 사랑과 파경, 딘의 죽음을 믿지 않는 팬들의 광란까지 자세히 전한다.
문화, 자연, 계급, 인종의 편견을 넘어서 - 자이언트
![](http://weekly.chosun.com/wdata/photo/news/200506/20050616000033_03.jpg) |
▲ 죽기 전 촬영을 끝낸 제임스 딘의 마지막
영화'자이언트' |
‘자이언트’는 텍사스의 풍광, 관습, 인물 관찰이 빼어난 에드나 휘버의
소설을 장대한 스케일로 옮겨왔다. 푸른 초원에서 승마를 즐기고 드레스를 입고 식사하는 버지니아 상류층 출신 미녀 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텍사스의 마르타 평원에서 소를 키우며 거칠게 살아온 목장주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의 결혼은 문화·자연의 충돌은 물론 남성과 여성, 멕시코인과
미국인의 인종 차별까지 사색케 한다. 베네딕트가의 목부 제트 링크(제임스 딘)는 계급갈등을 야기하고, 목축시대에서 석유시대로 넘어간 텍사스의
역사를 대변한다.
원작 소설에 거구로 묘사된 제트 링크 역에는 알란 랏드, 로버트 미첨이 거론되었다. 23살의 왜소한 청년 제임스 딘은 3시간21분 동안
10대에서 50대까지를 훌륭하게 연기하여 텍사스인의 우상이 되었다. ‘자이언트’의 노인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지만, 딘은 첫 주연작(‘에덴의
동쪽’)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다섯 명의 배우에 속하며 사후에 두 편의 영화(‘에덴의 동쪽’ ‘자이언트’)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은 유일한 배우가 되었다.
제임스 딘의 전기(傳記)에는 잘못 알려진 전설이 많다. 그의 미들 네임 바이론은 시인 바이론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친척 이름에서 딴
것이다. 딘과 염문설을 일으킨 여배우가 꽤 되지만 이는 영화사가 조작한 것이다. 과속운전 자살설이 떠돌았지만, 사고 당시엔 정상속도로 달렸고
상대 차를 피하지 못해 생긴 사고였음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험프리 보가트는 “제임스 딘이 더 살았다면 이런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고, 일리아 카잔은 “딘은 말론 브랜도와 같은 연기자는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수긍이 가는 예단(豫斷)이지만 위대한 배우와 감독이 간과한 부분도 있다. 조작된 신화라도 믿고 싶을 만큼 이미
제임스 딘은 팬들의 가슴에 특별한 스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