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결혼식 때 러시아빙상연맹 회장도 초대해야겠죠?"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를 만난 건 그가 러시아 소치로 출국하기 전날인 7일 오후였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최근 아들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쇼트트랙의 황제' 안현수가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빅토르 안'으로 돌아오는 첫 올림픽 무대. 오랜 기간 그를 곁에서 지켜본 아버지가 언론 또는 쇼트트랙 관계자들과 마주할 일이 잦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스포츠서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들이 폐위된 황제에서 부활할 것으로 자신했다. 또 "러시아 국가대표로 온 힘을 다하지만 한국인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건 현수도 나도 잘 알고 있다"며 애절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사무실 한 쪽 구석엔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당시 신문보도를 실은 액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그는 "소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뒤 새로운 액자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10일 오후 6시 45분(한국시간) 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을 시작으로 다관왕 도전에 나선다. 한국대표팀과의 운명적인 대결도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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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아버지 안기원 씨가 7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스포츠서울'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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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나리, 소치올림픽 이후 결혼 발표""요즘 현수보다 여자친구가 더 유명하지 않은가. 하하." 자연스럽게 안현수의 여자친구 우나리 씨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온라인에선 '안현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우 씨와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빙상연맹)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회장이 지난해 10월 여자친구를 현지에 초대했다. 올림픽까지 함께 지내면서 현수에게 힘이 돼 줄 것을 바랐는데, 소치에서 팀 스태프로 AD카드와 단복을 내준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만큼 기대가 큰 게 아니겠는가"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난 애초 현수에게 올림픽을 마친 뒤 여자 친구를 밝히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미 뭐 다 알려졌다"며 "소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한국과 러시아 양쪽에서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현수 결혼식 땐 은인인 크라프초프 회장도 초대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안현수는 10년 넘게 자신의 팬클럽에서 활동한 우 씨와 2011년 1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3년째 열애 중이다. 안 씨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딱 한 번 만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혼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에 대해 "자식 이기는 부모 있느냐"고 되물으며 "내가 아니라 아들이 결혼해서 사는 거니까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했다. 또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현수가 제대로 실력을 못 내면 러시아에 건너온 여자친구가 비난받지 않을까 해서다. 그런데 현수가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알려진 대로 현수 옆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돼주고 있다. 러시아 측도 현수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현수보다 1살 연상인 우 씨는 그간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힘이 돼 줬다. 러시아어까지 공부하면서 안현수가 예전 기량을 되찾는데 밀알이 됐다. 소치에서도 공식 파트너로 인정받아 가장 가까이서 멘토 구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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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왼쪽) 여자친구 우나리 씨. | 안현수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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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은 덤덤한데... 가장 떨리는 올림픽"본격적으로 소치 얘기를 꺼내자 안 씨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현수가 이전에 두 번이나 올림픽에 나갔지만 이번이 가장 떨리고 기대가 되는 것 같다"며 "아들은 덤덤한데 부모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귀화 3년 차인 아들에 대해 "늘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긍지를 가지라고 얘기한다. 내겐 아직도 '안현수'다. 다만 러시아에 가면 '빅토르 안'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나 몰라라 보낸 아들을 애지중지 키워준 러시아다. 그분들을 위해서 보답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2013~2014시즌 네 차례 월드컵 시리즈 개인전에서 금 2,은 4,동메달 2개를 기록했다. 지난달 유럽선수권대회에선 4관왕에 올랐다.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쇼트트랙 올림픽 메달 전망이 밝아진 이유다. 안 씨는 "현수를 통해 러시아에서도 쇼트트랙이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아들이 러시아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안 씨는 "좋은 모습으로 러시아로 떠났는데 당시 러시아대표팀을 이끈 한국인 감독과 코치들과 훈련 방법으로 충돌해서 몸이 망가졌을 때 정말 괴로웠다"며 "기껏 보냈는데…. 결국엔 그분들이 해임돼 팀을 떠난 뒤 황익환 전 성남시청 코치가 현수를 맡았지만, 타지에서 다시 몸을 추스르고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는 "유럽선수권에서 예전보다 더 우수한 기량으로 우승했을 때"라고 밝혔다. 그는 "덩달아 동료 선수의 기량도 높아져서 '현수가 제대로 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에선 출발 스퍼트가 약점이었는데 러시아가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금은 500m가 주종목이 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황 코치가 아들에게 맞는 훈련 방식을 선택해 지도한 것에 고마워했다. 무엇보다 매 순간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묵묵히 제구실하는 아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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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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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의 최종 꿈, 동생과 평창에 서는 것"안 씨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인적 쇄신이 없는 한 안현수의 국적 변경은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체대와 비한체대파의 갈등에서 비롯된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가 완전히 뿌리 뽑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라나는 현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변해야 한다"며 "김재열 회장을 주축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벌 싸움, 짬짜미, 코치 성추행 사건 등 올림픽 전후로 발생한 문제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현수나 나나 한국 선수를 만나면 마음이 참 그렇다. 편할 리 없다"며 "그러나 현재는 현수가 명예회복을 위해 러시아 국가대표로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아들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계주에서 색과 관계없이 메달을 땄으면 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올림픽 이후 아들의 진로에 대해서는 "이미 러시아에서 현수를 위한 로드맵을 짜놨다. 지도자는 물론 대학 교수 자리까지 제의한 상태"라며 "일단 현수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특히 쇼트트랙을 하고 있는 중학생 동생 (안)현준이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나도 힘들어서 러시아에 갔는데 현준이라고 오죽하겠느냐'라고 말하더라. 동생도 러시아에 가서 운동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준이와 소치에 가서 안현수를 응원할 예정"이라는 그는 "현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동생과 같이 출전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