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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깎는 부부의 숲 속 작업실

생활정보................./전원주택·인테리어

by 디자이너-이충길 2015. 8. 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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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백세시대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면 행복한 거고,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 직업을 빨리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직업이라 부를 것도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일상에서 그 시간만 조금씩 늘려간다면 괜찮은 인생이다.

↑ 스웨덴 유학 시절, 밤 10시면 학교 작업실 전기가 끊겨 다른 방 전기까지 끌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무를 깎았다던 부부. 지금도 칼을 쥐고 나무를 만질 때, 완성된 조각에 색을 입힐 때가 가장 즐겁고 기쁘다.


우연히 잡은 칼 한 자루, 나무 한 조각이 부부의 인생이 되었다. 늦은 나이였지만 열정 하나로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던 두 사람이 돌아와 강원도 산 중턱에 지은 집과 작업실이다.

who 용형준(45세), 임주현(39세) 씨 부부
before 남편은 자동차 정비사, 아내는 전업주부
turning 목조각에 꽂혀, 부부가 함께 3년간 스웨덴 유학을 떠나 2013년 귀국했다.
when 2014년 봄, 토목공사부터 시작해 올해 2월 새집에 입주
where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금창리, 계곡이 흐르는 산 중턱
now 집을 짓고 별채의 작업실에서 부부가 함께 나무 조각을 한다.
작업실 이름인 '후가(hugga)'는 스웨덴어로 '칼이나 도끼 따위로 나무를 베다'라는 뜻.
contact http://blog.naver.com/skogsdraken

부부가 손댄 나무들에는 칼과 도끼가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고 따뜻한 느낌이다. 11년 전, 아내는 한 외국 잡지의 나무 산타 인형을 보고 무심코 '나 이거 하나 만들어 줘' 하고 말했다. TV 보느라 흘려듣는 듯했던 남편은 퇴근길 한 손에 나무 한 토막을 들고 왔다. 초등학생 때나 쓰던 조각칼로 나무를 깎았고, 아내는 그 위에 물감으로 칠을 했다. 완성된 산타 조각을 선반에 올려놓았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를 계기로 외국사이트와 원서를 뒤져가며 꾸준히 목각 작품을 만들었다. 남편이 새벽까지 나무인형을 깎아 놓고 출근하면, 아내가 색을 입혔다. 미국 잡지사 주최의 산타 조각 대회에도 참가했는데 첫해에는 떨어졌지만, 이듬해에는 무려 '대상'을 탔다.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도 거치며, 나무 깎는 일에 대한 갈증과 열망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동안 칠만 했던 아내도 조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관련 책을 쓴 미국 교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며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가르치는 내용이 저희가 원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 대신 스웨덴에 있는 전통 수공예 학교 Sätergläntan을 추천받았죠."

'Döderhultarn'라는 스웨덴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 있었던 부부는 이 학교의 일주일짜리 단기코스를 먼저 받아보기로 했다. 걱정하던 500만원 경비는 국내 제과회사 공모전에 참가해 받은 상금으로 거짓말처럼 해결됐다. 스웨덴어를 하지 못하면 입학이 어렵다는 말에 상심하기도 했지만, 멀리서 찾아가 열의를 보여준 덕분인지 귀국 후 넣은 입학원서에 허가가 났다.

↑ 별채로 만든 작업실 내부. 문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아 작업한다. 생목을 자르고 모양을 다듬어 톱질, 칼질, 섬세한 무늬와 표정을 만들어내는 작업까지 모두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 나무로 뭔가 만들고 나서 괜히 히죽히죽 웃을 때가 있다. 둘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 다락을 빼면 이 집의 유일한 방인 침실. 부부는 예산에 맞추다 보니 벽이 하나둘사라지더라며 허허 웃는다.

↑ 그동안 조각했던 산타 인형을 깨알같이 모아두었다. 가운데 칸 인형들은 스웨덴에서 만든 것, 맨 아래 칸은 대부분 독학으로 조각하던 초기작들이다.

↑ 작업할 때 사용하는 칼의 손잡이와 집도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칼이 작업실에만 수십 개다.

Look at here!

↑ 형준 씨가 나무를 조각할 때 쓰는 칼들. 이를 본 주현 씨가 유학 시절 일화를 풀어놓는다. 스웨덴에서 1학년 때 한 사람당 2개씩 칼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어찌나 열심이었는지 남편은 같은 시간에 완성한 칼을 30개나 가져오더라고.

↑ 부부가 처음 만들었던 산타 인형. 첫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나무로 직접 만든 생활용품으로 대접하는 것이 부부의 큰 즐거움이다.

↑ 각종 서랍장에 달아서 쓸 수 있는 나무 손잡이. 얼마 전 스웨덴으로 보내기도 했던 아이템이다.

↑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칼과 도끼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 작업실 한편에는 칠을 해서 말리는 방이 따로 있다. 책상 앞 창 너머로 보이는 숲이 싱그럽다.


Oh My Favorite


↑ 처음 입주했을 때 집은 벽, 바닥 마감은 물론 싱크대도 없는 상태였다. 싱크대는 철재 프레임에 직접 원목으로 짜려고 했지만, 막상 주문해서 받아본 철재 프레임 용접이 가구로는 쓸 수 없을 정도였다. 할 일이 태산이었던 부부는 고민 끝에 이케아 싱크대를 사다가 조립하기로 했다. 싱크대 설치 후 벽에는 나무로 선반을 만들어 달았다.

↑ 나무 인형 목걸이는 주현 씨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 특히 스웨덴 사람들은 이런 목걸이를 좋아해서 평소에도 많이들 하고 다닌다고. 직접 만든 이 목걸이는 스웨덴 상점에서 팔리기도 했다.

 

부부는 살던 집을 전세 주고, 그 돈을 자금 삼아 스웨덴으로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그 학교에 한국인은 두 사람이 처음이었던 건 물론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3년이란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말 그대로 '산'이었던 이곳의 터부터 닦아 집을 짓기 시작했다. 예산에 맞추느라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고, 한 달에 걸쳐 집 내•외부에 페인트칠을 직접 하느라 몸이 고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집과 작업실은 두 사람의 또 다른 시작이 되어줄 소중한 보금자리다.

숲 속 작업실에 나란히 앉아 종일 나무를 깎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달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 좋아하는 일, 원하는 일을 하며 나이 들어 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을 거라고 부부는 입을 모아 말한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이미 행복을 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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