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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여관 신사장에서 디자이너 최정유의 일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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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이충길 2014. 8. 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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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여관 신사장에서 디자이너 최정유의 일상 공간

40년 역사를 지닌 여관을 되살린 복합 문화 공간 신사장과 마당으로 이어진 주택. 신사장과 오랜 세월을 같이한 해묵은 공간 속에 디자이너 최정유의 집이 숨어 있다. 고요하지만 비범하게, 서정성이 묻어나는 작업물을 주로 발표해온 것처럼, 날것 그대로의 느낌과 정갈함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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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한쪽에 마련된 최정유의 작업대. 미혼인 디자이너의 집은 삶과 작업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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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디자이너 최정유는 눈에 띄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이다. 최근에는 전통문화 보전에 힘쓰는 비영리단체 아름지기의 후원으로 '문'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올해 늦가을 즈음, 아름지기 전시관에서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홈페이지(www.byjungnew.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요하게, 비범하게, 일상의 물건을 만들다

삼베 조각을 잇고 꿰매서 백자의 선을 구현한 서정적인 화병. 최정유의 작업이 인상적인 것은 익숙한 전통 소재에 새로운 쓰임새를 담는 치열함, 그러면서도 과시적이지 않은 모양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태도 때문이었다.

2012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전시에서 그녀의 삼베 작업이 단연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된 것은 명료한 디자인에 감정을 담을 줄 아는 명민한 디자이너의 출현을 반기는 의미도 있었을 테다.

그리고 작년 가을 즈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처음으로 디자인 전시를 기획했다 하여 찾은 자리에서 다시금 최정유의 작업을 만났다. 이번에는 네팔에서 자생하는 풀이 재료였고, 철 소재의 다리를 더해 바구니를 만들었다.

단순히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라고 하기에는 그녀가 주목하는 재료와 그녀의 작업 영역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저는 주로 일상에서 쓰이는 소소한 물건들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그릇이나 컵, 바구니, 의자와 조명 등 일상의 물건에 나의 스토리를 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작업 힌트도 주변에서 얻는데요, 삼베 같은 경우에도 익숙한 전통 소재여서 그 쓰임새를 달리해보는 아이디어를 생각했어요. 현대사회에서 백자는 장식품으로서 존재 이유가 더 크잖아요? 그래서 삼베로 만든 백자를 구현해본 거지요."

최정유는 이렇듯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그 정서를 표현해내는가 하면, 때로는 네팔, 베트남 같은 지역의 로컬 재료로 세계인의 보편적 미감을 만족시키는 제품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한 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그녀 안에 글로벌 감각이 새겨진 것일까.

그녀가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실상 소재와 주제의 경계를 두지 않고, 쓰임새가 좋은 것, 단아한 미감이 있는 것이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한편으로 그녀를 작가라 부르는 이들이 많은데, 그 이유 또한 그녀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오브제 디자이너'임에도 불구, 그녀는 대량생산 대신 손으로 만드는 물건을 선호한다.

"아직까지는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좋은 제품을 구상하고, 재료를 경험하고, 내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요. 대신 판매를 위한 용도로 'by jungnew'라는 이름의 세컨드 라인을 만들었고, 대량과 소량의 중간 정도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도 해요. 얼마 전 새로운 전시를 오픈했는데요, 거기에서는 'by jungnew' 라인의 옹기 식기를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을 했고, 도자기를 전공한 도예과 학생이 제작을 했지요. 그랬더니 수작업이지만 생산이 용이했고 가격이 낮아졌어요. 앞으로도 손으로 만드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오래된 2층 주택의 삼각 지붕을 그대로 살린 주방의 모습. 전 주인이 쓰던 아일랜드 식탁도 그대로 두고 쓰는데, 어느 날은 식탁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작업대가 되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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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new'의 옹기그릇 시리즈. 옹기토와 백자토의 배합을 이용해 다양한 컬러를 만들어냈고, 유약을 칠할 부분과 매트하게 처리할 부분을 나누어 디자인했다. 전통 옹기의 느낌도 살리면서 이렇듯 단정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완성한 게 반가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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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유는 유럽에서 공부한 다른 디자이너들이 유럽풍의 디자인을 내놓는 것과는 달리 전혀 다른 느낌의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양한 기회로 아프리카, 네팔, 베트남 등의 국가를 돌며 영감을 얻고 그 나라 전통 소재를 가지고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다는데, 그런 경험이 오히려 그녀에게 전통을 소재로 하는 작업에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다락방은 그녀의 침실이자 아지트이기도 하다. 아늑한 공간에서 잠도 자고, 책도 읽고, 디자인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미니멀한 공간이 그녀의 고요한 작업과 닮아 보였다.

삶과 작업이 어우러지는 공간

디자이너 최정유의 집은 다소 독특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4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여관 속에 바로 그녀의 주거 공간이 숨어 있기 때문.

"재작년 즈음 한동안 경영난에 시달리던 신사장의 주인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주인은 여관으로서 수명을 다한 이곳을 문화적 코드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어 했죠. 그러다 다양한 전시, 콘퍼런스, 문화 이벤트를 기획하는 프로젝트 그룹 '리어'가 신사장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맡았고, 공간의 실질적인 운영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앞쪽 여관 건물은 리어에서 카페 및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요. 뒤쪽 안채는 레지던스처럼 아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작가를 찾았는데, 그들과 인연이 있었던 덕분에 제가 안채 2층을 온전히 쓰게 되었고요."

이야기가 있는 공간은 힘이 세다 하였던가. 오래된 여관의 외관을 그대로 살린 신사장은 간판만 영어로 바꾸고 내부도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재생 공간이 내뿜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졌는데, 이는 오래된 2층 주택을 최소한으로 고친 최정유의 주거 공간 또한 마찬가지.

"신사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주택도 단장했는데요, 화장실과 주방 싱크대를 고쳤고 오래된 벽에 나무 패널을 덧댔어요. 조금 러프한 마감이지만, 신사장과 비슷한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지요"

한편으로 아늑하게도 느껴지는 것은 작은 다락방이 있고 계단 뒤편으로는 책장이 숨어 있는 오래된 주택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충분히 누리며 공간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넓은 테라스에는 그녀가 직접 목재를 사다가 집 모양 프레임을 만들었고, 지붕 부분에는 리넨 천도 걸어두었다. 여기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온전한 휴식 시간을 누리는 게 앞으로 그녀의 계획이라고.

그녀의 집을 구경하는 동안 눈에 띄는 물건이 여럿 있었다. 싱크대 위쪽 선반에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그릇부터 그녀가 디자인한 옹기, 손맛이 느껴지는 나무 그릇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주인의 취향을 짐작케 했다.

베란다로 향하는 선반에도 다양한 공예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싸리 빗자루 하나도 모양부터 매무새까지 간결하면서 멋진 것들로만 골라둔 것이 인상적이다. 사실 우리 삶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무릇 디자인 또한 일상에서 즐기는 것, 진짜 나의 취향이 발현되었을 때 좋은 제품으로 탄생되는 게 아닐까.

그녀의 집을 찬찬히 둘러보고 난 뒤, 최정유는 진정 자신다움을 오롯이 일상 물건으로 보여주는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최정유표 물건들이 언제고 이렇듯 고요하게, 비범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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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의 모습. 왼쪽의 공간이 그녀의 진짜 작업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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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그녀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비롯, 창문에도 커튼 대신 삼베 천을 걸어두었다. 귀여운 COOK 자수도 그녀의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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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로 향하는 쪽에 놓인 선반에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일상용품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선반 옆에 걸린 작은 빗자루 2개 또한 그녀가 모은 물건. 날렵하게 삼각형으로 디자인한 모양새며, 하얀 끈을 단정히 묶은 것 하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북촌 길가의 트럭에서 구입한 것이라 한다. 이래서 눈이 보배라 하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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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과 신사장을 잇는 작은 마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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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의 외관은 40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층 카페 입구만 재단장한 뒤 신사장 로고를 영어로 바꿨는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디자인 덕분에 오히려 더 멋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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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에 디자이너 최정유가 거주하는 중이다. 1층은 건축가가 쓰는 공간이고, 2층이 그녀의 주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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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 1층은 프로젝트 그룹 리어에서 직접 운영하는 살롱 카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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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은 리어에서 사무실 겸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공간. 신사장 내부는 골조와 계단, 창문 등 여관의 틀을 살려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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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스튜디오의 입구.

신사장은 40년 전에도, 지금도 신사장이다. 하지만 고단한 이들의 몸을 누이던 여관은 이제 문화적 콘텐트에 목마른 이들이 찾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 프로젝트 그룹 리어의 주도 아래 젊은 콘텐트 기획자, 디자이너, 작가 등이 모여 재미있는 일을 작당하기도 하는데, 그 일원 중 한 명이 디자이너 최정유다.

그들은 이곳을 단순히 대관을 위한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게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삶의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콘텐트를 생산하고 소개하는 곳, 나아가 철학과 시스템을 갖춘 장소로 다져나가겠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기획_홍주희 기자 사진_전택수(JEON Studio)
레몬트리 2014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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