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못 속인다는 옛말 그대로 계절 변화는 어김이 없습니다. 퍽이나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는데도 말복, 입추가 지나자마자 해만 기울면 금세 선선하고, 나지막하던 풀벌레소리는 방 안 깊숙이 파고들어 귓불을 잡아당길 듯 요란스럽게 울어댑니다. 여름의 끝은 곧 가을의 시작이니 입을거리, 먹을거리도 자연의 변화에 맞춰 채비할 때입니다.
무더위 견디느라 잠시 주춤했던 작물들은 일교차가 조금씩 커지면 새로운 성장기를 맞이하고, 열매채소들은 한여름보다 풍성해집니다. 잎과 열매 모두 먹을 수 있고 풋열매와 완숙한 열매 제각각 고유의 맛과 영양을 지닌 호박도 이즈음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거두는 재미가 삼삼합니다. 호박고지로 말리거나 장아찌를 담가 장기저장하기도 좋아서 조금만 부지런하면 겨우내 필요한 반찬거리 장만도 어렵지 않습니다.
탄수화물이 주성분이면서 비타민 A와 C, 식이섬유가 풍부한 호박은 이뇨작용, 붓기 제거, 위장 보호와 변비ㆍ비만 예방 및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어 건강식품으로 널리 애용됩니다. 호박에 들어있는 베타카로틴 성분은 눈과 폐 기능을 좋게 하고, 노화와 당뇨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색깔이 진할수록 효능도 높아서 애호박보다는 늙은 호박, 늙은 호박 중에서도 과육이 주홍빛을 띤 재래종 멧돌호박을 으뜸으로 여깁니다. 개량종이 많다보니 생김도 맛도 다양합니다. 애호박을 고를 땐 살이 단단하고 색깔이 진한 것으로 고르고, 밭을 일군다면 종자를 잘 선별해 심어야겠습니다. 호박은 거름으로 큰다고 하지만 종자가 실하고 지력이 살아있으면 튼실하게 자라고, 저 스스로 자랐을 때 맛과 약성도 뛰어난 법이라 겉으로 드러나는 크기나 수확량에 현혹될 필요가 없습니다.
애호박을 거두기 시작하면 날마다 호박 반찬 한 가지씩 준비하게 됩니다. 다른 식품에 곁들여 조리하기도 좋고, 호박 한 가지만으로도 나물볶음, 탕, 찌개, 부침, 튀김 등 다양하게 만듭니다. 호박은 기름에 볶아 먹으면 카로틴의 흡수가 좋아집니다. 들기름에 볶아서 들깨가루찜이나 새우젓찜으로 먹고, 육수를 부어 새우젓 들깨탕을 만들면 한층 구수한 맛이 납니다. 얇게 썰어 들기름에 구워 집간장과 양념장을 곁들이거나, 집간장ㆍ고춧가루ㆍ파ㆍ마늘 등을 넣어 호박구이를 무치면 볶았을 때보다 맛이 더 진합니다.
동글납작하게 썰어 통밀가루 반죽 옷을 입힌 애호박전은 집간장 양념과 어울리고, 나긋나긋하게 부친 호박채전은 맑은 초간장을 곁들이는 게 깔끔합니다. 씨가 생기기 전의 살이 단단한 애호박을 소금물에 절여 꾸덕꾸덕 말린 후 된장에 박아 장아찌도 담급니다. 꼬들꼬들하면서 짭조름한 호박장아찌는 쌈장, 채소 무침양념 또는 육수 낼 때 요긴하게 쓰입니다. 먹다 남는 자투리 애호박은 잘게 썰거나 갈아서 밀가루 반죽에 섞어 빵ㆍ국수ㆍ전병을 만들면 은은한 향과 연녹색 고운 색깔로 음식의 맵시를 더해줍니다.
애호박으로 만드는 음식 중에는 차가운 장국에 띄워먹는 네모진 만두 편수가 있습니다. 만두는 겨울철에 많이 먹고 만두 빚기도 여름보다는 추운 계절이 낫지만 편수는 애호박이 제철일 때 먹는 만두입니다. 담아놓은 모양이 물 위에 조각이 떠있는 것 같아서 '편수(片水)'라 부르는데 호박을 주된 재료로 버섯ㆍ양파ㆍ풋고추 등 채소 몇 가지만 있으면 손쉽게 만듭니다. 말복이 지나면 더위도 한풀 꺾이고 호박도 더 맛있을 때라 이맘때가 만들기도 좋고 먹기도 좋습니다.
만두소에 애호박 다음으로 많이 넣는 버섯은 호박고지로 대신해도 깊은 맛이 납니다. 말린 애호박을 볶으면 은근한 단맛과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 속맛을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애호박을 볶을 때 너무 익히면 물컹해지면서 물이 생기고, 덜 익으면 설겅거려 제 맛도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를 넣기도 불편하니 센 불에서 재빠르게 볶아 알맞게 익힙니다. 호박고지와 양파는 충분히 볶아주고, 담백한 채소볶음에 감칠맛을 살려주는 풋고추는 생으로 다져 넣습니다. 부추나 오이로 풍미를 더해주어도 좋고, 육류를 즐긴다면 소고기를 볶아 넣어도 됩니다. 만두소는 발효시킨 빵 반죽에 소를 넣어 굽거나 찌면 채소빵으로 먹을 수 있고, 빵가루ㆍ옥수수가루에 묻혀 튀기면 크로켓으로 완성됩니다.
만두는 속맛 못지않게 피맛도 중요합니다. 만두피도 유행을 타는지 갈수록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해지는데 굳이 전분을 과하게 섞어가며 얇게 빚어야 맛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껍질이 약간 남아있게 방아를 찧은 통밀가루로 피 반죽을 하면 색깔이나 식감은 투박해도 구수하게 씹히는 맛이 좋고, 포만감은 크되 뒷맛은 더없이 깔끔합니다.
호박만두는 반달형으로 통통하게 빚거나 노릇노릇 굽기 좋게 납작한 모양을 내기도 합니다. 찐만두ㆍ군만두ㆍ만두맛탕, 채소 볶음에 곁들여 볶음만두, 고추장떡볶이처럼 만두볶이로 먹어도 별미입니다. 국물은 끓여서 식히는 정도로 준비하고, 선선하다 싶으면 따뜻하게 먹어도 좋습니다. 고명은 파프리카 맛이 나는 홍고추, 생채소로 먹기 좋은 황궁채, 달걀 지단으로 색감과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찬바람 일기 시작하면 호박잎도 각별한 맛이라 살짝 데쳐 전을 부치면 아삭하고, 된장ㆍ들깨가루ㆍ조갯살을 넣어 국물 자박하게 조리면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초가을의 맑은 햇살과 더불어 맛깔스러운 호박요리 다양하게 즐겨보세요.
재료준비(약 30개 분량)
애호박 500g, 애호박고지 50g, 양파 1/2개, 풋고추 5개, 소금, 집간장으로 만든 맛간장, 들기름, 통깨, 후추, 참기름, 디포리 육수, 된장, 웃고명(홍고추, 달걀지단, 황궁채) 만두피 : 통밀가루 300g, 물 150cc, 소금 1작은술 (육수 만드는 방법은 지난호(2014년 8월호) 참조)
만드는 방법
↑ 1 애호박은 곱게 채 썰어 가로로 두세 번 잘라 소금을 약간 뿌려 버무리듯 뒤적여준다. 살짝 숨이 죽으면 물기를 짠 후, 들기름에 볶아 넓은 볼에 헤쳐 놓는다.
↑ 2 호박고지는 물에 담가 부드러워지면 씻어 건져 잘게 썰고, 양파도 비슷한 크기로 썰어 들기름에 볶아 맛간장으로 짜지 않게 간을 한다.
↑ 3 1과 2에 다지듯 잘게 썬 풋고추와 소금ㆍ통깨ㆍ후추ㆍ참기름을 넣어 간을 맞추고 고루 섞어 만두소를 만든다
↑ 4 통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어 되직하게 반죽해 30분 이상 두었다 한 번 더 치대준다. 만두소가 식으면 반죽을 얇게 밀어 7~8㎝ 정사각형으로 잘라 소를 넣고, 대각선으로 끌어 모아 꼭꼭 눌러 붙여준다.
↑ 5 김 오른 찜솥에 면포를 깔아 만두를 쪄내고, 디포리 육수에 된장을 체에 걸러 넣어 심심하게 간을 해서 끓여 식힌다.
↑ 6 고명 재료는 곱게 채 썰고, 그릇에 만두를 담아 장국을 붓고 고명을 올린다.
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ㆍ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 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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