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 조선 사직을 열다 / 조선 건국
태조 이성계는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닙니다. 그의 가문은 할아버지 때부터 쌍성총관부에서 원나라의 벼슬을 맡고 있었습니다. 쌍성총관부는 원이 화주(평남 영흥군)에 설치한 통치기구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성계 가문은 고려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문을 고려로 끌어들인 인물은 바로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으로부터 독립하려고 1356년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 이자춘이 고려군을 도왔고 공민왕은 공로를 인정해 이자춘에게 동북 지방의 병마사 벼슬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이성계 가문이 고려의 벼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가문의 세력은 순식간에 성장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전까지 고려의 지배를 받지 않던 이성계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려 군은 변변찮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변방의 장수라 해도 단숨에 최영과 맞먹는 거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고려는 홍건적과 왜적으로 뒤숭숭했던 때인데 이성계는 약 20년간 한반도 전역에서 왜적을 물리쳐 국민의 영웅으로 부상을 하게 됩니다. 그때 최고 실력자는 최영으로 조정에서도 승승장구해서 이성계는 최영 바로 다음의 실력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권력을 쥐고 나니 이성계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주로 신진사대부였습니다. 그들은 고려를 개혁하길 갈망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우왕, 창왕, 공양왕을 차례대로 갈아 치우는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도 분열을 해 버렸습니다. 이성계는 1391년 정도전, 조준과 함께 토지 제도의 개혁에 관한 과전법을 만들어 실시합니다. 이 제도는 고려 초기의 전시와 제도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십니다. 권문세족의 토지를 빼앗아 관료들에게 나눠졌던 이 제도는 조선 초기까지 유지가 됩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새 나라 조선 건국을 선포를 합니다. 하지만 새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곱지는 않았고 대부분 백성들은 자신을 고려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도를 어디로 정할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 왕국의 정비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듬해인 1393년 태조 이성계는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새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짓고 상국으로 모시는 명나라로부터 조선이란 국명을 써도 좋다는 허락도 받게 됩니다. 국가 통치이념으로는 성리학을 채택하고 1394년에는 한반도의 중심인 한양(서울)에 왕궁을 짓고 천도를 합니다. 한양으로 천도한 것은 한강이 있어 수륙 교통이 모두 편하고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외적이 침략했을 때 방어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정비가 끝내고 태조 이성계는 개국 공신에게 막대한 땅과 노비를 주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공을 많이 세우고 영향력도 컸던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나중에 정도전은 태조의 후계자 선정에도 깊이 개입하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이 낳은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는데 정실부인의 자식들이 크게 반발을 합니다. 특히 다섯째 방원의 반발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태조를 지지하게 되는데 이유는 재상을 중심으로 한 왕도정치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석은 강력한 왕의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인물이 만약에 왕이 된다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태조 이성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재상 정치를 꿈꾼 이상주의자 정도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태조 이성계 조선 사직을 열다 / 조선 건국|작성자 똑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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