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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삶의 연장이지 다른 삶이 아니다

생활정보................./전원주택·인테리어

by 디자이너-이충길 2016. 5. 2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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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어디서 어떻게 살까 ? 생각 해보자.

사람은  나이를 먹기 싫어도 먹고. 늙기 싫어도 어쩔수없이 늙어간다.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수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 를

(꿈꾸고 있는 미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경제적인 안정’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하는 필수 조건일 뿐,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여기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꿈꾸던 미래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준비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지도 모르겠다.

귀농을 위해 직업을 바꾸다

 

 



 

토지 컨설턴트가 되어 자기 집 설계하는 A 씨
“이제 집 지으면 평생 살 집인데,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잖아요. 내 손으로 벽돌 올리고,

내 손으로 꽃나무 심은 진짜 내 집을 짓고 싶어요.”
A 씨가 귀농을 결심한 건 10년전 사업에 실패해 가족과 함께 아무 연고 없던

강릉으로 내려가 살면서부터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바다가 있고 텃밭이 있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호박씨 심으면 호박 이 열리고,

오이씨 심으면 오이가 열린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무슨 진리처럼 다가왔지요.”

 
강릉에서 5년 동안 귀농 준비를 틈틈이 하면서 그는 땅 전문가가 다 됐다.

강릉이라는 지역 특성상 통나무집이나 펜션을 짓는 공사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자주 찾아오는 건축회사 사장과 친분을 쌓으면서

건축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주말이면 건축 현장에 밥 싸들고 찾아가 집 짓는 것 구경도 하고,

업계 사람들을 소개 받으면서 집 짓기는 물론 땅 고르는 법까지 귀농을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공부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에는 금세 도사가 되기 마련이듯 자금을 모아 회사를 창업하고

토지 컨설턴트로 이름을 올렸다.

향인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새 터를 잡고 자신과 같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토지 매매를 알선하거나 전원주택 건축을 대행해 주며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땅을 소개해 주었더니 집도 지어달라고 하대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사실, 남의 집으로 내 집 짓는 연습을 하는 셈이잖아요.

” 짬을 내서 각종 건축 박람회에 가 친환경 건축 자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농사철엔 주변 농가에 가 일을 거들어 주면서 그야말로 실전에 가까운 귀농 공부를 하고 있다.


1 귀농은 삶의 연장이지 다른 삶이 아니다

 

처음에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내려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근거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인연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갑자기 무릉도원에 안착한 듯 착각에 빠진다면 귀농한 의미가 없어진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의미가 있다.

 

2 내 집은 내가 짓는다는 생각을 갖는다

무턱대고 건축업자에게 내 집 짓는 일을 일임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관여해 진짜 내 집으로 만들어야 애착도 생기고 내가 살기 편한 집을 꾸밀 수 있다

건축법도 어느 정도 공부하고, 관련 책도 많이 볼 것. 또한 무허가 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하므로 주의한다.

 

 

 

 

귀농을 허(許)하노라


토박이가 인정한 이방인, k씨 부부
‘이도 저도 아니면 시골 가서 텃밭이나 가꾸며 살지 뭐.

전원생활이야말로 노년의 안락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인 양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고쳐먹을 것.  벌어놓은 돈이 아주 많거나

조용한 전원에서 외톨이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10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홀로 강화도로 내려온 k씨는

외지인이 아닌 온전히 ‘덕하리 사람’으로살아가기 위해 7년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강화도에 내려가자마자 마을 이장댁을 찾아 주민들과의 물꼬 트기부터 시작한 그. 처음엔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경조사, 대소사는 다 찾아다니며 아는 척을 해오는

그를 보고. 언제부터인가 막걸리 한 사발, 소주 한잔을 건네며 마음을 터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괴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산자락에 집터를 닦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7년을 생활했으니.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 집을 짓자는 심사도 있었고 집을 짓게 되면

내 손으로 설계하겠다는 마음에 집터와 똑같은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 살며

소꿉놀이 하듯 화장실, 주방, 거실의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경향 하우징 페어,

동아전람과 같은 건축 박람회도 7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따라다녔다.

 

아카시아나무 천지였던 산비탈에 자그마한 텃밭이 생기고,

정원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가자 서울에 남기를 고집하던 아내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름을 따 ‘양화농원’이란 자그만 문패까지 내걸고 완성한 부부의 투박한 흙집.

앞뜰엔 여느 시골집과 같이 상추며 고추며 오이가 자라는 텃밭이,

뒤뜰엔 주말마다 찾아오는 도시 손님들을 위한 조경 잘 된 정원이 숨겨져 있다.

진짜 농사꾼이 되기 위해 지난해 농업 학교까지 수료했다는 k씨.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제집 찾은 손님을 어찌 빈손으로 보낼 수가 있냐며

손수 기른 채소들을 잔뜩 손에 들려주는 인심은 영락없는 시골 사람이다.

 

 

 

전원생활, 현대 문명과 병행하라

전원생활이 은둔 생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있는 자녀와 친구들과의 지속적인 왕래를 위해서는

자동차와 컴퓨터는 전원에서도 기본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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