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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창에 담은 집

생활정보................./전원주택·인테리어

by 디자이너-이충길 2016. 8. 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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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인근 경사도로에 자리한 시선재. 40대 후반의 부부가 눈에 확 띄는 집을 지어달라며 건축가를 찾아왔다. 박영채 제공

부동산 투기 열기 속에서 지난 세기를 통과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상식은 집이 가진 본래의 기능이다. 재테크 생각을 버리고 나면 집은 스스로 그 다양한 면모를 열어 보여준다. 집은 삶의 터전이자 취향의 단면이고, 놀이터이자 추억이 쌓이는 곳이다. 그 중 가장 설레는 것은 집이 선물이 되는 순간이다.

제주도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다 보면 고개가 뒤로 휙 젖혀질 만큼 눈에 띄는 집 한 채가 있다. 건축가 서현(한양대 교수)씨가 설계한 시선재(示線齋)다. 40대 후반의 부부가 20년 간 열심히 일한 자신들에게 “선물로 줄 집을 짓고 싶다”며 의뢰했다.

“집이 눈에 확 띄었으면 좋겠어요”

“바다가 보입니다.”

삼면이 바다지만 바다 전경을 가진 집은 의외로 흔치 않다. 건축가로서도 자신의 그림에 바다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호재인 셈이다. 서 교수를 제주도로 불러 들인 것도 이 한 마디였다. 그러나 두말 않고 달려간 그 앞에 나타난 건 눈 앞에 내달리듯 펼쳐진 바다가 아닌 전신주와 전깃줄, 간판, 비닐하우스가 어지럽게 가린 아득히 먼 바다였다. 대지도 전면도로에서 2~3m 솟아 급하게 경사를 이룬 괴상한 모양새였다. 실망한 건축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건축주의 요구였다. 심상찮은 차림새로 나타난 부부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집이 길에서 눈에 확 띄었으면 좋겠어요.”

자기 집을 짓는 사람들이 외관에 대해 이렇게 화끈한 요구를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주변과 다르고자 하는 마음은 동양사회 특유의 자기검열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건축주의 개성은 주로 집 내부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 희귀한 요구가 건축가의 피에 불을 질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서울로 돌아가 설계에 착수했다.

시선재가 앉은 땅의 모습. 도로에서 2~3m 높은 데다가 경사가 져 있다. 바다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위에 1, 2층으로 집을 올렸다. 박영채 제공
시선재가 앉은 땅의 모습. 도로에서 2~3m 높은 데다가 경사가 져 있다. 바다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위에 1, 2층으로 집을 올렸다. 박영채 제공

집이 앉을 땅은 삼각형을 닮은 사각형에 지대가 높아 토목공사가 필수였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공사의 양을 최대한 줄이는 과정에서 정삼각형 평면을 가진 독특한 집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집을 진짜 특이하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다. 건축가는 불충분한 바다 전망을 진짜 바다로 만드는 방법에 골몰했다. “흔히 ‘바다를 본다’고 할 때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수평선과 그 위에 있는 하늘입니다. 그 외 다른 근경들은 다 잘라내고 수평선만 남기면 되는 거죠.”

수평선을 담아낼 긴 수평창과 삼각형 건물. 답은 이미 나왔다. 삼각형 한 변에 긴 창을 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그 이상을 원했다. “평범한 창에는 바다를 향한 열망이 없어요. 텅 빈 거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처럼 수평선을 그냥 담고 있는 거죠. 제가 원한 건 ‘바다가 보인다’가 아니라 ‘바다가 보인다!’였습니다. 바다로 다가서려는 갈망과 의지의 표현이요.” 건축가는 수평창을 모서리에 내기로 했다. 느낌표 하나를 찍기 위해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3억에서 10억으로, 다시 5억으로

긴 수평창을 모서리로 배치할 경우 그 윗부분의 벽은 허공에 뜨게 되므로 지지대 역할을 할 구조물이 필요하다. 건축가가 택한 것은 교량에 많이 쓰이는 철 구조물 트러스(truss)다. 수평창 상단에 삼각형의 철제 트러스를 짜 얹은 뒤 거기에 유리를 붙이면 그 자체로 지지력을 갖춘 구조물이자, 삼각형 평면과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삼각형 입면이 완성된다.

삼각형 유리에 생각이 미치자 다른 재료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삼면이 삼각형 유리로 덮인 집이라니. 이거야말로 선물 같은 집이 아니고 뭔가. 흥분해서 디자인을 진행시키던 건축가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예산이었다. 어느새 10억원이 넘어가고 있었던 것. 건축주가 초기에 이야기한 금액은 3억원대였다.

애초에 설계했던 거실 이미지. 전면에 트러스를 짜 넣고 유리를 대는 환상의 공간을 꿈꿨지만 예산의 벽 앞에서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서현 제공
애초에 설계했던 거실 이미지. 전면에 트러스를 짜 넣고 유리를 대는 환상의 공간을 꿈꿨지만 예산의 벽 앞에서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서현 제공

건축주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서 교수는 두 개의 모형을 들고 갔다. 하나는 유리로 덮인 삼각형 집, 하나는 삼각형이되 콘크리트로 덮인 집. 유리집 모형을 보고 크게 만족스러워 한 건축주는 대안으로 들고 나온 콘크리트 집을 보고 말할 수 없이 실망했다. “아니 이걸 콘크리트로 덮는다구요?” 이미 유리집을 한 번 본 이상, 안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건 건축주도, 건축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예산을 5억원대로 늘리고 바다를 향한 모서리 쪽만 유리로 만들기로 했다.

외관과 예산에 대한 합의가 되자 설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지하는 주차장,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방과 드레스룸. 집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모서리에 자리 잡을 거실이다. 건축가는 설 때와 앉을 때 모두 수평창에 담긴 바다를 볼 수 있도록 거실 내부에 계단을 만들었다. 주차장에서 1층으로 올라와 문을 연 순간 정확히 눈에 담기는 수평선은, 계단 3개를 올라와 소파에 앉을 때도 여전히 눈 높이와 일치한다. 선 키와 앉은 키의 차이만큼 계단을 만든 셈이다. 위쪽 트러스에 붙인 유리를 통해서는 하늘이 가득히 들어온다. 열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층유리를 사용하고 유리의 양면에 패턴을 인쇄해 하늘은 담되 빛은 걸러냈다. 환상 속의 삼각유리집은 이렇게 현실과 만났다.

시선재 거실 풍경. 소파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와 수평선이 정확히 들어 맞는다. 트러스에 붙인 유리에는 패턴을 인쇄해 열효율에 신경 썼다. 박영채 제공
시선재 거실 풍경. 소파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와 수평선이 정확히 들어 맞는다. 트러스에 붙인 유리에는 패턴을 인쇄해 열효율에 신경 썼다. 박영채 제공

주차장과 드레스룸, 화장실에도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깃들었다. 건축주 부부가 몰고 온 세단을 눈 여겨 본 건축가는 그들이 차를 ‘모셔두는’ 부류임을 간파하고 차를 온전히 부각시킬 수 있는 밋밋한 배경의 주차장을 완성했다. 드레스룸에는 천창을 냈다. 굳이 태양광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드레스룸에 천창을 낸 건 인공조명 아래서와 자연광 아래서의 색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이것 역시 건축주의 간단치 않은 패션 감각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드레스룸을 옷 창고로 쓸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밖에 나가기 전에 확실하게 패션을 확인하는 장소가 돼야 했습니다.”

시선재라는 당호를 처음 꺼낸 것은 건축주다. 당연히 한자라고 생각했던 시선재가 ‘see(바다)’와 ‘sun(태양)’에서 따온 것임을 안 건축가는 잠시 황당했지만 곧 거기에 의미를 붙여주기로 했다. “이 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수평선입니다. 수평선을 보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視線齋’로 하려다가 생각을 바꿨어요. 온갖 어지러운 근경을 비집고 기를 써서 수평선을 창 안에 담았으니 ‘示線齋’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평선을 보는 집이 아니라 수평선을 보여주는 집이죠.”

1층 거실 반대편에 주방이, 2층엔 안방과 드레스룸, 화장실이 있다.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실내에 우아하게 원형을 그리는 나선계단이 이색적이다. 박영채 제공
1층 거실 반대편에 주방이, 2층엔 안방과 드레스룸, 화장실이 있다.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실내에 우아하게 원형을 그리는 나선계단이 이색적이다. 박영채 제공
주차장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비스듬하게 뒤틀린 모양이 왼쪽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계단 끝 왼쪽엔 현관문이 있다. 박영채 제공
주차장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비스듬하게 뒤틀린 모양이 왼쪽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계단 끝 왼쪽엔 현관문이 있다. 박영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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