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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산다는 것

차한잔의 여유......../시.낙서

by 디자이너-이충길 2017. 9. 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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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찻값은 한발 앞서, 식사대는 같은 걸음, 술값은 한 발 뒤로!’ 그러다 보니 자신이 값을 치르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몸싸움 비슷한 풍경이 벌어 지기도 했다. 그런대 밥 먹으며 술 마시고 셀프 커피까지 한꺼번에 하는 요즘에는 별 소용이 없는 말이 되었다. 더치페이를 한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접대를 해야 할 입장이나, 대게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밥값을 내게 되는데, 조직의 문화에 따라서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다.

 

한 식당에서 경찰관, 선생님, 공무원, 목사님, 네 사람이 함께 식사를 거나하게 했다고 한다. 사실 이들 넷이 함께 식사할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만일 그렇게 됬다면 그 밥값을 누가 냈을까? 다 알겠지만 그 식당주인이 냈다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말이다. 밥값을 내지 않을 특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평소에 밥값을 잘 내지 않던 사람이 밥을 산다고 하면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밥과 술을 사는데 사는 입장에서 때론 크게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 지불한 밥값의 전부를 자기가 샀다는 생각인데 자기가 먹은 것은 필히 빼야 한다. 더 많이 먹고 마셨다면 그만큼 더 빼야 한다. 그런데 어지간해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나도 우선 계산서에 끊긴 가격 전부를 머릿속에 넣고는 쫀쫀하게 집에 와서 뺐다.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는 냐! 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되었건 먹고 산 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엄중한 일이다. 매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산 적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먹고 산다는 것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기에 우매한 질문이다.

 

인격자 끼리 밥이나 차나 술을 함께 먹고 마시며 대회를 나눈다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친밀감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후에 함께 식사를 했다면 화간으로 인정하여 사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가 없다. 죽음을 앞 둔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의미를 새겨 볼 일이다.

 

사업 실패로 오랜 세월을 어렵게 살다가 어느 정도 정상을 찾아 간 사람이 이런 고백을 했다. ‘삶의 안정을 찾은 것도 좋지만 그보다 찾아 온 친구에게 저녁을 흔쾌히 살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다.’

 

성질 급한 사람이 밥값을 먼저 낸다고 하는데 이는 밥값을 잘 내지 않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 아닌가 싶다. 피 같은 돈이 나가는데 급한 성질이 작동한다는 것인데 그냥 웃고 만다. 얻어먹어도 부담이 되는 밥도 있다. 인격적인 교류가 있기 전과, 사는 쪽에서 뭔가 의도를 두고 있을 때다.

 

고노무현대통령과 유시민씨가 함께 한 식사 이야기다. 노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유시민씨를 불러내서 뭔가 물어 보려고 여의도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유시민씨는 밥은 잘 얻어먹었는데 주차비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밥을 먹는 시간 보다 대화가 더 길었기 때문인데 주차장이 없는 식당이라면 그리 값비싼 식당은 아닌 것 같다. 이젠 밥을 사려면 주차비도 챙겨 주어야 한다.

 

신분이나, 나이 차이 등, 때문도 아닌데 누군가에게는 계속 얻어먹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번 밥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약에 이런 구조에 있지 않은 사람은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유아독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꼭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철저히 거래관계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어떤 단체가 잘 굴러 간다면 거긴 밥값을 서로 내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계모임은 이런 구조를 잘 통찰한 일이다. 서로 돈을 각출해서 모아 돌아가면서 한 사람에게 몰아주고 돈을 받은 사람은 밥을 사는 일이다. 결국 돌아가면서 자기 돈 내고 밥을 사는 일인데 기분 좋게 한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특별한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여유 있는 큰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을 크게 도울 수는 없고, 그저 밥값을 열심히 내는 일이 베풀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밥을 열심히 사자!’ 이 한 마디를 하려고 길게 설레발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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