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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 산수화

이충길민화

by 디자이너-이충길 2019. 6. 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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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사람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6대 화가를 흔히 3원 3재 (3園 3齋)라 하는데 3원은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말하고, 3재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현재 심사정이다. 어려서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도한 심사정은 산수화는 물론 화훼花卉와 초충草蟲을 비롯한 화조화와 도석 인물화등 다양한 그림에 모두 능했고, 특히 중국의 남종문인화를 토대로 조선의 미감을 담은 조선 남종화를 탄생 시켰다.

심사정의 증조 할아버지 심지원은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으로 명문가였다. 그러나 할아버지 심익창이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귀양을 갔다 돌아 왔는데 연잉군(영조의 왕자때 봉호) 시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대역죄인이 되고 말았다. 심사정의 할아버지는 영조가 즉위한 뒤 극형에 처해진다. 역적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자손들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심사정은 그림으로 생계수단을 삼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심정주는 포도 그림으로 이름난 화가였다. 아버지는 벼슬길이 막힌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두번째 스승은 겸재 정선이였다. 훗날 심사정과 가장 교우가 깊었고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은 제발을 남긴 강세황은 "심사정의 그림에 화조화 영모 다음으로 산수화"를 평가 했지만, 심사정 회화의 진수는 역시 산수화에 있으며, 그가 가장 공을 들인 것도 산수화 였다.

[이예성지음, 현재 심사정 P 87]

주유관폭(舟游觀瀑)

<주유관폭>은 화면 왼쪽에 폭포와 절벽이 있고, 오른쪽에 배를 타고 이를 감상하는 인물이 그려진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소식蘇軾(1036-1101)의 [적벽부 赤壁賦]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적벽부]는 소식이 황주로 귀양 갔을 때인 1082년 가을 (음력 7월16일)과 초겨울 (음력 10월15일) 두 차례에 걸쳐 손님들과 배를 타고 적벽에서 놀았던 일을 읊은 것으로 여러 화가들에 의해 수없이 그려졌던 주제이다.

주유관폭,1740년, 비단에 담채, 131 x70.8 cm 간송미술관 소장

심사정이 34세에 그린 작품으로 소식의 <후적벽부>를 소재로 한 것이다. 적벽부는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로 여러 문인화가들의 작품에도 남아 있다.

송죽모정 (松竹茅亭)

'방운림필의 倣雲林筆意' 즉 예찬倪瓚(1301-1374)의 뜻을 따랐다고 밝힌 <송죽모정>은 근경의 빈 정자와 강을 사이에 두고 먼 산을 포치布置한 것이 전형적인 예찬식 구도를 따른 작품이다. 원말 사대가 중 후대에 가장 선호 되었던 것은 황공망과 예찬의 양식이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송죽모정,종이에 담채, 29.9 x21.2cm, 간송미술관

예찬양식의 그림에 송죽松竹을 그린 것은 특이한데, 아마도 조선 후기 화가들 중에는 심사정이 처음인 것 같다.

강상야박도 ( 江上夜泊圖 )

<강상야박도>는 심사정의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서.화가 결합된 전형적인 남종산수화인 이 그림은 근경, 중경,원경으로 이루어진 3단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야트막한 언덕에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 강기슭에 등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배, 그 너머로 연운에 둘러싸인 마을과 먼 산은 시의 내용과 어울려 고즈넉한 봄밤의 정경을 보여준다. 심사정의 현존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림에 시를 써넣은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며, 시가 있는 것은 주로 초기 작품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시 구절은 두보杜甫(712-770)의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 로 풀이되는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로 시작하는 이 시는 두보가 관직생활을 그만두고 성도에 내려와 살 때 지은 것이다. 봄밤에 촉촉히 대지를 적시며 내리는 비에 대한 감회를 쓴 시로 그림에 인용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들길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 어두운데 강가의 배만 불이 밝구나 -

강상야박도,1747년,비단에 수묵담채,153.6 x61.2 cm, 중앙국립박물관

40대 초반 작품으로 남종화풍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시.서.화가

결합된 전통 남종문인산수화로 그의 독특한 화면 구성과 세련된 필묵법을 살펴볼

수 있다.

고사은거(高士隱居)

깊은 산속의 조촐한 초가집을 향해 막 외출에서 돌아오는 듯 다리를 건너고 있는 고사高士와 마당에서 놀고있는 학들을 소재로 한 <고사은거>는 내용으로 미루어 매화를 아내로, 학을 지식으로 삼고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살면서 20여년간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북송 때의 은자 임포 林逋(967-1028)의 고사를 그린 것이다.

고사은거,종이에 담채, 102,7 x 60.4 cm, 간송미술관

북송시대 은자인 임포의 고사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은 거칠고 강한 부벽준과 농묵을 사용한 흑백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전형적인 절파화풍의 그림이다.

계산모정(溪山茅亭: 산속 시냇가의 초가 정자)

몇 그루의 나무와 빈 정자가 서 있는 전경과 중경의 강, 그리고 원경으로 이루어진 산 등 예찬식 구도를 보이는 <계산모정>은 매우 소략한 필치로 그려진 남종산수화이다. 이작품은 예찬의 구도를 따르고는 있지만 강폭이 좁고 원경의 비중이 커서 다소 복잡한 느낌을 주며, 이전에 그린 예찬 양식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계산모정,,1749년, 종이에 수묵, 42.5 x 47.4 cm, 간송미술관

43세에 김광수의 외당숙이던 사천 이병연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노론 중진이던 이병연에게 그림을 그려준 것은 김광수와의 친분이 작용했을 것이다. 강을 중심으로 한 3단 구도라는 점에서 예찬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중경이 좁고 원경의 비중이 커지며 피마준과 부벽준이 섞여 있어 전체적으로 변모된 모습을 보인다.

방심석전산수도(倣沈石田山水圖)

초옥에서 글을 읽고 있는 선비가 있는 전경과 바위절벽의 중경, 그리고 뒤쪽의 주산 등 세 부분의 경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그림은 각각의 경물이 절묘한 시선의 이동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왼쪽으로 뻗어 나가며 시선을 바위절벽으로 유도 하고 있는 초옥 둘레의 나뭇가지와 거의 90도로 꺾여 먼 산으로 시선을 끌어가고 있는 절벽 위의 소나무 등을 통해 시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우도함으로써 경물들이 서로 연결되고 화면에 통일감을 주는 것은 심사정의 독특한 방식이다.

물가에 자리한 초옥 뒤에는 괴석과 파초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으며, 고즈넉한 가운데 집 안에서 글을 읽고 있는 선비는 비록 작게 그려졌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방심석전산수도, 1758년, 종이에 담채, 129.4 x 61.2 국립중앙박물관

깊은 산속 초옥에서 고즈녁하게 글을 읽고 있는 선비를 그린 것으로 52세 때의 작품이다.

절제된 필선과 묵을 사용하여 깔끔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그림은 문인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주며, 기법상으로도 남종화법과 부벽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심사정 양식'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깊은 산속 초옥에서 단정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는 선비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심사정이 은연중에 자기 자신을 드러낸 그림으로 이해된다. 비록 작고 소박한 초가집이지만 둘레에는 괴석과 파초를 심어 문인들의 고아한 취미를 즐기고, 찾아오는 이 없어도 책을 벗 삼아 세상사를 잊고 유유자적 살고 있는 혹은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이 담겨 있는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깊고깊은 산속, 다리로 연결된 외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초가는 자의든 타의든 (천성적이든 의도적이든) 사람들과 흔쾌히 어울릴 수 없었던 그의 성격과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 떠난다는 서정적 주제인 '파교심매'는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맹호연 孟浩然(689-740)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탈속한 고아한 선비의 상징인 맹호연은 말년에 잠시 관직에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평생 유랑과 은둔 생활을 했는데, 아직 매서운 겨울 추위가 가시지도 않은 이른 봄, 매화를 찾아 당나귀를 타고 파교를 건너 길을 떠났다는 것에서 '파교심매'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파교심매도,1766년,비단에 담채, 115.5 x 50.6 cm, 국립중앙박물관

세상일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졌음을 반영하듯 60세 이후 심사정의 그림은 더욱

한가롭고 여유로워진다. 눈도 녹지 않은 이른봄 매서운 추위를 뒤로 하고 매화를 찾아

나선 맹호연의 고사를 그린 것이다. 아직 회끗희끗 눈이 쌓여 있고 메마른 가지는

을신년 스러운데, 짐 보따리와 말안장에 살짝 칠한 붉은색은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선비의 설레는 마음인 양 그림에 밝은 기운을 불어 넣었다.

선유도(船遊圖)

심사정이 말년에 그린 <선유도>는 풍랑이 몰아치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는 인물들을 화폭에 담아 내고있다. 사나운 물결에 밀리며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작은 배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데, 정작 인물들은 먼 데 경치를 감상하는 듯 느긋한 표정이다. 그들의 것이 분명한 책이며 매화며 학은 이들의 신분을 은근히 드러내며 뱃놀이의 멋을 한껏 높여준다.

언뜻 보이는 <선유도>의 이러한 외형과는 달리 이 그림은 심사정이 말년에 세상의 영욕에서 벗어나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 감회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성난파도는 " 50년간 우환이 있거나 즐겁거나 하루도 붓을 잡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몸이 불편하여 보기에 딱한 때에도 그림 물감을 다루면서 궁핍하고 천대 받는 괴로움이나 모욕을 받는 부끄러움"을 견디며 역모죄인의 후손인 그가 헤쳐 나와야 했던 세상살이에 다름 아니고, 작지만 결코 뒤집어 지지 않는 배는 유일한 위안이자 스스로를 지켜주었던 그의 예술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펼쳐 나갔고, 이제는 세상사를 초연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선유도,1764년, 종이에 담채, 27.3 x40 cm, 개인

58세 때 그린 것으로 세상살이에 초연한 자신의 심경을 담아냈다. 험난한 물결에서도 느긋한 자세로 뱃놀이를 즐기는 인물을 통해 그는 그동안 해쳐 온 고단했던 삶과 스스로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심사정 화조도

포도(葡萄)

조선시대의 포도 그림은 명나라 때 명필가인 악정(1418-1472)이 [花葡萄設]에 포도의 덕을 언급 하면서 문인들 사이에 널리 공감을 얻었으며, 사군자와 더불어 사랑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특히 묵포도가 많이 그려졌으며, 중기 양식은 후기로 이어졌다.

포도,종이에 수묵, 27.6 x 47 cm , 간송미술관

위에서 내려온 포도 나뭇가지가 대각선을 이루며 구불구불 아래로 뻗은 <포도>는 빠르고 힘차게 뻗어 나간 덜굴손이나 각지게 꺾인 가지의 모습, 거칠게 그려진 잎사귀 등에서 그의 아버지 심정주의 영향이 느껴진다. 반면 가지가 축 처지도록 탐스러운 포도송이는 한 알, 한 알이 명료하게 그려져 대조를 이룬다. 심정주가 포 도송이를 농담에 차이를 두어 그렸던 것과 달리 심사정은 농담의 차이와는 별개로 포도알 하나하나를 구별하여 그렸는데, 이것은 오히려 신사임당이나 황집중이 구사했던 더오래된 표현법이라는 점이다.

매월(梅月)

달과 매화의 조합, 부러진 굵은 가지와 새로 난 가지의 대비, 큰 꽃송이등 조선 중기 매화도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매화 나뭇가지가 위로 곧게 뻗은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왼쪽하단 구석에서 거의 오른쪽 상단 구석까지 찌를 듯이 올라간 대담한 구도는 심사정의 표현이다.

매월, 종이에 수묵, 27.5 x47.1 cm , 간송미술관

비백 飛白으로 처리된 가지는 심하게 꺾이면서도 마침내 끝까지 올라가 꽃을 피웠는데, 고난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마침내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그를 보는것 같다.

파초초충(芭焦草蟲)

시원스럽게 잎이 펼쳐진 두 그루의 파초와 괴석 그리고 파초를 향해 사뿐히 날아들고 있는 잠자리 한 마리를 그린 것이다. 파초는 포도와 더불어 육군자 중의 하나로 사랑 받았던 식물로 문인의 고아한 인품을 상징했다. 심사정은 화폭 가득히 파초 두 그루를 그렸는데, 담묵으로 이리저리 붓을 움직여 쓱쓱 잎의 형태를 만들고 진한 먹으로 잎맥을 그렀으며, 파초 줄기는 묵선으로 윤곽만 그리고 희게 남겨 두었다. 물기를 많이 머금은 습윤한 붓으로 문지르듯 괴석을 표현했는데, 자연스럽게 번진 것이 오히려 더 괴석다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뻗은 잎 끝이 살짝 오므려진곳에 잠자리가 부드럽게 휘어져 들어오며 경물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파초초충, 종이에 수묵, 32.7 x 42.4 cm, 개인

그림 오른쪽에는 심사정이 쓴 "파초훤불이한 최좌무료( 芭草暄不已寒 崔坐無聊)라는 제발이 있다. " 파초는 따뜻하여 이미 춥지 않으니, 높은 자리를 즐기지 아니한다 " 라는 의미인데, 이 그림이 50세 즈음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심사정은 명예, 권력, 세간의 평가 등에서 벗어나 세상사에 초연해진 마음을 파초에 담아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작은 풀들이 잔잔하게 깔린 정원의 한 풍경을 그린 <파초초충>은 어느 여름 숨도 멎을 것 같은 한낮, 마치 삼매에 든 듯 고요한데 사뿐히 날아든 잠자리 한 마리가 순간 정적을 깨뜨리며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

'묵선( 墨禪 )'이라고 찍힌 낙관의 의미가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유청소금(幽淸小禽)

새와 나무를 수묵만을 사용하여 그린 <유청소금>은 난, 국화, 대나무 ,잡풀들이 그려진 소박한 자연을 배경으로 나무에 앉아 있는 작은 새를 그렸느데 가을 풍경의 소산한 분위기와 담백한 맛을 묵의 농담만으로 표현했다.

유청소금, 1762년, 종이에 수묵, 58 x 34.5 cm, 개인

임오년 가을에 그렸다는 글귀, 담묵과 소략한 필법으로 그려진 국화, 까슬까슬한 느낌의 마른 나뭇가지 등으로 보아 <유청소금>은 가을의 한 정경을 그린 것이지만, 어떤 소재는 계절에 맞지 않으므로 각각의 소재들은 상징적 의미를 위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즉 화폭에 그려진 난, 대나무, 국화 , 바위 등은 문인들이 사의 표출의 수단으로 자주 애용했던 소재들로, 각 소재가 갖고 있는 실제의 계절이나 생태와는 무관하게 그렸다. 이 그림은 화조화의 형식을 빌려 선비가 가까이 하는 네 가지 벗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며, 어쩌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고 있는작은 새는 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심사정 자신을 나타낸 것일지도 모른다.

괴석형란(怪石荊蘭)

바위 옆에 가시나무와 함께 한 포기 난을 그린 <괴석형란>은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의 난이 아니라 산속이나 마당에서 잡풀들과 어울려 피어난 야생란을 그린 것이다. 난엽은 갈필로 빠르게 쳐냈으며, 꽃은 담묵으로 흐리게, 꽃술은 진하게 그려 변화를 주었다. 난의 뒤쪽에는 가시나무를 그렸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난을 그릴 때 늘 가시나무를 함께 그린다는 것이다.

괴석형란, 비단에 담채, 26.5 x 32.4 cm, 간송미술관

난을 그린 <묵란>이나 난이 배경으로 그려진<유청소금>에서도 난 옆에 가시나무가 그려져 있다. 쓸모없는 소인배를 상징하는 가시나무와 군자를 상징하는 난을 함께 그림으로써 난의 상징성을 더욱 강조 했던 것 같다.

쌍치도(雙雉圖)

그림에 등장하는 꿩은 새 중에 가장 금슬이 좋아 항상 암수가 함께 다닌다고 하여 부부가 화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소재이다. 그림속의 소나무와 목련, 대나무는 대표적인 절개, 충절의 상징이며, 목련도 북쪽을 향해 꽃울 피우기 때문에 임금을 향한 충절을 상징한다.

제발에 유자안兪子安이란 인물을 위해 그린 것이다. 유자안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절개. 충절을 의미하는 소재들을 꿩과 함께 그린 것으로 미루어 강직하고 , 부부 금슬도 좋은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려진 듯하다. 병자년 중추에 그렸다고 하니, 여러 가지 좋은 의미와 바람을 담은 추석 즈음의 선물용 그림이었을 것 같다.

쌍치도, 1756년, 종이에 담채, 104.4 X 61.4 cm , 개인

와려한 모습의 꿩은 미와 행운의 상징으로 많이 그려졌던 소재이다. 50세 때 그린 이 그림은 산수를 배경으로 꿩 한 쌍을 그린 꿩 그림으로 이후 꿩 그림의 전형이 되었다.

위쪽의 소나무 가지와 작은 새들, 아래의 계곡과 그 옆의 언덕 혹은 바위, 그 위에 있는 한 쌍의 꿩으로 이루어진 구도와 배경은 전통 양식을 계승한 그의 다른 화조화에서도 나타난다.

[ 위의 모든내용은 이에성 지음 '현재 심사정' 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임]

[출처] 심사정 산수화|작성자 수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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