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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TV] 내가 만든 광고에는 씨앗이 박혀 있는가? - 제일기획 신경호 CD

광고자료.............../광고이야기

by 디자이너-이충길 2007. 10. 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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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보다 훨씬 더 먼 옛날. 어느 야트막한 언덕배기 옆으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감이 열려 땅으로 떨어지면 속에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워 새로운 감나무가 자라나고 또 그 후손들이 씨앗을 떨어뜨려 다시 새로운 감나무를 키워내고...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주위에는 어느새 감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그러다보니 땅 속의 양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서로 받기 위해 가지를 뻗어 치열한 생존다툼을 벌이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문제를 깨닫는 순간 해답은 시작되나 봅니다. 감나무 한 그루는 고민했죠. ’’씨앗을 되도록 멀리 퍼트릴 방법은 없을까. 우선 땅 속의 단물을 빨아올려 감 열매를 달콤하게 만들고 색깔도 눈에 잘 띄는 선홍빛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지나던 동물들이 열매를 따먹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속에 있는 씨앗을 배설물로 배출하겠지. 그러면 우리 후손들을 더 넓은 곳으로 많이 퍼뜨릴 수 있을 거야. 속에 박힌 씨앗은 동물의 배 속에 들어가서 소화돼 버리면 안되니까 적당히 코팅을 해서 말야.’’


감나무의 작전은 훌륭하게 적중했습니다. 이후로 감나무의 후손들은 동물들의 배설물을 자양분으로 하여, 동물들이 움직이는 영역을 따라 골고루 번성하게 되었답니다.


실제로 식물들이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맛있는 과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씨앗을 통해 자신들의 종족을 보다 멀리, 보다 많이 퍼뜨리고자 하는 식물의 치밀한 생존전략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동물들이 식물들의 열매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물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물을 이용한다는 주장이죠. 결국 우리가 사과나 수박을 먹는 행위는 이들 식물의 유인책에 넘어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서도 이런 비유가 가능하겠지요. TV광고나 신문광고에 등장하는 현란한 비주얼이나 톡톡 튀는 카피가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먹음직스런 열매라면, 광고주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는 그 속에 박힌 씨앗입니다. 크리에이터들이 광고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해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어 내는 것도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광고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광고주의 메시지를 원활하게 전달하기 위해 표면을 달콤한 과육으로 포장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하지만 간혹 현란한 테크닉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집착하다보면 그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흐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크리에이터의 감각은 보이는데 정작 그 상품이 보이지 않는 광고. 씨 없는 수박같은 광고들 말입니다. 


제작현장에 있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일 못잖게 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일이 어렵고 또 중요한 일임을 느끼게 됩니다. 좋은 광고의 조건으로 언급되는 여러 항목들 중에서 새로워야 하고(New) 달라야 한다(Different) 라는 기본적인 것들과 함께 광고목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성하는가 하는 점이 항상 함께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광고집행의 목적이 명확해야겠죠. 



목적없이 집행되는 광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목적이 명확하면 그 해답으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지기 마련입니다. 광고제작의 가장 첫번째 단계는 광고의 해결과제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되짚어 보는 것에서 시작돼야 할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요?


이 칼럼을 위해 TV광고를 검색하면서 어떤 광고를 소개할까, 조금 고민이 됐습니다. 요즘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세련된 광고들이 참 많습니다. 감각적인 영상과 멋진 음악이 어우러진 때깔 좋은 광고들은 한국광고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때깔 좋은 광고들이 양산되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소박한 광고가 아쉬워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번 씹고 버리는 풍선껌같은 광고가 아니라 광고 속에 튼실한 씨앗 하나가 턱 박혀 있어 광고를 보고 난 후 마음에 뭔가 흔적을 남기는 광고. 광고 인기사이트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광고. 그런 광고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별로 눈 여겨 보지 않는 광고를 고르고 싶은 삐딱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이번에 제가 선택한 광고는 롯데제과의 자이리톨 광고입니다.


롯데제과의 자일리톨 껌은 잘 아시다시피 제과업계 최대의 히트상품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생들에게 핀란드의 수도가 어디냐고 물으면 "자일리톨" 이라고 대답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상품이죠. 무엇보다 "자기 전에 씹는 껌" 이란 새로운 개념이 소비자의 마음을 흔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닦은 뒤에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도전적인 광고로 껌이 충치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미지를 조금씩 정착시켜 나갔습니다. 웬만한 용기 없이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개념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하여튼 롯데 자이리톨껌은 5,000원대 고가의 플라스틱 용기제품까지 출시하면서 "껌값"이라는 말을 무색케하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롯데 자일리톨 껌의 대박으로 경쟁사들은 유사제품들을 출시하게 되고 롯데는 이런 혼동을 막기 위해 롯데 자이리톨 "휘바"란 제품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이번 광고는 원조 자이리톨 껌, 롯데의 이미지를 "휘바"라는 고유한 식별코드로 부각시켜 유사품과 확실한 선을 긋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광고입니다. 




- Copy -

NA : 확인하셨습니까? 핀란드산 자일리톨

여 : 아..휘바

NA : 감미료중, 자일리톨 100%

여 : 롯데 자일리톨 휘바

NA : 대한치과의사협회 공식인증상품

여 : 휘바 이젠 눈감고도 고르겠다.

NA : 자일리톨 껌, 휘바를 확인하면 실수없다. 롯데 자일리톨 휘바

여 : 쉽게 고르시라고 휘바. 소비자는 제대로 고를 권리가 있으니까요.


목적이 명확한 만큼 메시지 또한 명쾌합니다. 카피 한 줄 한 줄이 경쟁사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찌르며 롯데 자이리톨의 원조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겉모양도 그렇고 세상에 어쩜 그렇게 비슷해요?" 광고를 오락으로 즐기는 사람들보다 매장에서 껌을 고르는 사람들의 가슴을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습니다. 




- Copy -

여1 : 자일리톨 껌이요? 저는 그냥 롯데인줄만 알았어요. 어쩜 그렇게들 비슷해요?

NA : 휘바를 사용하면 실수 없다. 롯데 자일리톨 휘바

여 : 소비자는 제대로 고를 권리가 있으니까요.



이번 광고의 성공에는 모델선정이 또한 큰 역할을 했습니다. 광고적으로 연출된 멘트가 아닌 소비자의 진솔한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김혜자씨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30년 가까이 한가지 브랜드만을 위해 광고활동을 해 왔던 김혜자씨를 섭외하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젊은 연예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진실성을 느끼게 됩니다. 


결코 현란하지는 않지만 알맹이가 확실한 이번 광고는 롯데 자이리톨 브랜드의 향후 진로를 더욱 순탄하게 열어주는 광고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예술작품과 달리 광고는 그 수명이 무척 짧습니다. 시대의 트렌드를 표현의 가장 큰 지침으로 하기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구닥다리 신세를 면할 수 없는 것이 광고의 슬픈 운명입니다. 하지만 광고 한편 한편이 뿜어내는 작은 기운들이 "브랜드"라는 나무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그 광고는 결코 일회성 자극으로 폄하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광고가 그런 광고였으면 좋겠습니다. 튼실한 씨앗 하나를 집어 넣어 나중에 그 씨앗이 "브랜드" 란 큰 나무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든 광고 속에는 어떤 씨앗이 박혀 있을까? 두려워집니다.

신경호 CD│ 제일기획

출처 : 광고정보2
글쓴이 : linchp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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