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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사진여행

라오스로 떠나자......./라오스소개

by 디자이너-이충길 2013. 11.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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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사진여행 [2013년 1월 13일-18일]

 

 

 

 

 

라오스로 떠난다.

라오스라는 나라 이름에 금방 기억나는 것이 없다. 지리 시험에서 수도 이름 쓰기에 조금 어려운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잠시 프랑스를 물리치는 와중에 베트남과 함께 잠시 등장하고는 끝이었다. 축구에서도 아세안 게임에서도 별로 눈여겨 보이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유명해지고 미얀마의 불교 유적들과 베트남의 휴양지들이 여행객을 유혹할 때도 라오스는 보이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다 제주 올레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도보 여행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배낭여행의 천국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번 여행에는 초등학교 한 곳을 방문하고 그 학생들에게 생활용품과 학용품을 선물하였다. 그런 행사를 함으로 여행이 경건해지고 작은 의미를 부여함으로 하여 일행들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라오스는 참 가난한 나라다.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정치가 장기집권으로 유지되는 나라 대부분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캄보디아와 태국과 베트남의 틈새에서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라오스도 지정학적으로 분쟁에 휘말릴 요소가 많았고 식민통치의 잔해와 장기간의 개발 부재로 여기저기 가난의 모습이 베여 있었다. 심지어 나라 이름 자체도 자기들이 원하는 ‘라오’가 아닌 프랑스식 발음인 라오스이다. 인구 750만에 국토의 넓이는 한국의 1.1배이며 별다른 산업도 없고 지하자원은 풍부하여도 아직 미개발 상태인 국가이다.

 

2010년 미국 타임스지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00곳 중에 라오스가 포함되어 있다.

라오스에서 여행은 첫날 수도 비엔티안의 황금빛 사원 탓 투앙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을 거쳐 박물관에서 시작하였다. 아침이 열리는 시간 시내 주변을 산책하니 주황색 옷을 입은 승려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행렬을 따라가니 말로만 들었든 탁빗 즉 일반인들이 공양하고 있었다. 모두 가난해도 고운 마음을 가지고 깊은 신심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말을 붙이면 아주 친절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어 두려움이 없게 해 주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난이 그냥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이 맑고 적의가 없다. 그 믿음을 보러 이 새벽의 잠을 희생한다. 불교 유적들은 간혹 부수어져서 새롭게 만들고 시멘트로 새 옷을 입혔지만 독특한 건축양식과 그 자체가 지닌 역사의 무게로 하여 함부로 범접할 수 없게 하였다. 최근 조성된 현대적 의미의 신비한 불상 조각공원인 부다 파크도 불교 건축에서의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해내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에메랄드 사원은 지니고 있던 에메랄드를 태국에 빼앗겨 흔적으로 남아 있고 거대 사원 탓 투앙도 원래의 금색 칠이 벗겨지자 시멘트를 사용하여 더 높이 올렸다. 그리고는 비엔트얀에서 이보다 더 높은 건축물을 지을 수 없게 하였다. 사회주의라는 정치 체제로도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무서운 종교의 힘이다.

 

 

 

 

 

 

 

 

 

 

박물관은 오래된 문화 유적보다 근래의 전쟁 유물에 더 치중한 느낌이 들었다. 정치적인 계산도 있겠지만, 이 나라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독립이라는 사안이 그만큼 비중이 있으리라 라는 생각은 해도, 어딘지 빈약해 보이고 역사의 시작 시점이 어디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근래 역사가 독립군이나 일제에 저항한 애국지사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친일파에 더 치중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이곳의 박물관은 민족정신을 가지게 하기에는 적당하다는 생각과 함께 수많은 기관총 소총 권총 지뢰와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 달램도 가져본다. 민족이 힘이 약해져서 이민족에게 지배를 받게 되면 비극은 싹트기 시작한다. 또 그 기간이 길고 상대가 강대한 나라일수록 독립에 대한 의지는 약해지고 투사들의 비극은 묻혀 버리고 만다. 이 박물관이 말하고 있는 것 즉 후손이 바르고 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자료나 유물은 부족하고 전시기획 자체는 엉성하지만, 교훈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한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잊혀 가는 것과 잊힌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가치를 지닌 옛것을 부수고 칠하고 고치고 다시 만들어서 그냥 보여만 주려는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려 이제 낡은 것들이 빛나기 시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없애고 부수고 버린 것들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인 사정으로 개발할 여유도 없었던 나라들의 문화 유적이 유명해짐은 당연한 축복이고, 역설적으로 우연히 현명한 선택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늘어나는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해 자꾸만 바뀌고 편리해져 가는 수도 비엔티안을 뒤로하고 험준한 산길을 8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가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란쌍 왕조 800년의 수도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고도로 여행객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길게 늘어선 카페들과 밤에 몽족이 운영하는 야시장이 흥미롭고 또 하나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붉은색 천막을 치고 우리나라 사람과 성격이 비슷한 몽족이 수공으로 만든 제품들을 파는 수백 개의 상점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행객들로 아주 복잡하다. 물건은 많은 종류는 아니지만, 상술에 익숙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만져도 별로 관심도 없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노천 상점들이다.

4불을 주고 고양이 인형을 하나 샀다. 7불을 달라는 것을 4불에 사고 나서 이내 후회를 했다. 나는 아직 멀었다. 바가지를 쓰면 얼마나 쓴다고 조심을 하고 결국 가격을 에누리하고 말았다. 이 힘든 수공예 노동의 노력과 그것을 판매하는 저 사람들을 보고도 굳이 경제 개념을 도입하는 여유 없는 마음 쓰임새를 깨단한다.

관광객의 처지에서는 어찌 보면 낭만적이고 또 몽족으로서는 어찌 보면 관광객과의 한판 겨누기이지만 전 세계에서 바람처럼 몰려온 멋쟁이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의자에 한번 앉아 보지도 않고 학문적 표현으로 상업적 거래에 몰두하여 그 풍경들을 지나친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현장에서 그 낭만을 즐기는 것이 목적인 저 유럽 사람들의 눈에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한국인은 어떻게 비칠까 궁금하다.

다음날 이른 새벽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도로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준비한 밥이나 과일을 일렬로 지나가는 스님에게 공양하는 탁빗이라는 이 행사는 구도하는 스님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의식이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유익하고 재미있고 경건한 경험으로 전통을 이처럼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모두 엄숙하고 정중하여 어떤 상서러운 기운이 전체에 퍼지고 있는 듯하였다.

 

 

 

 

 

 

 

 

 

 

 

너무 잘 꾸며져 잠자기 아까운 호텔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시설도 사용하지 않고 잠만 자기에 억울하여 남들이 잠든 시간 나와서 커피를 마신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려 밤늦게 피곤하게 근무하는 종업원에게 팁을 주었는데 눈이 나빠 얼마짜리를 주었는지 모른다. 너무 작은 돈이어서 실망하지 않았는지 잠시 근심스러워 했다.

라오스의 몽족은 모계사회로 결혼을 할 때 남자가 금 20돈을 준비하여 여자 집에 처가살이를 한다. 미의 기준은 백색 피부이며 두뇌가 좋고 성격이 급하다. 여자가 벌어서 남자를 먹여 살렸으며 그에도 일부다처제도 가능하다고 한다. 남자가 귀하기 때문이다.

 

유럽인 배낭여행자의 낙원으로 지정된 방비앵으로 이동하였다. 중국의 계림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 같이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카르스트지형의 아름다운 산들이 솟아있고 쑹강이 흐르는 곳이다.

아침 방비엥의 강변을 걸어 본다. 곳곳에 숙박시설, 방갈로, 호텔과 식당이 있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먼지를 날리며 오고 간다. 문화가 경제에 침식당하여 이 땅의 주인들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자신들의 고향을 내어 주고 일꾼으로 전락하였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들고 온 돈의 힘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 하고 그들의 땀은 자본의 배를 채운다. 물론 아직도 절대 가난에 시달리는 이웃에 비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처음부터 모두 행복하였던 이 나라 사람들에게 슬프게도 계층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한다.

구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 부부를 만났다. 우리의 숙소와는 천지 차이인 그들의 보금자리, 그래도 행복은 그곳에 있었다. 모자란 것 없이 살면서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사람과,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나누어 주는 사람과의 차이, 그들과 나의 사이에는 그 차이가 있었다.

코끼리 동굴을 구경하고 나서 조금 이동하여 동굴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머리에 해드 랜튼을 켜고 튜브를 몸에 달고 동굴탐사를 한다. 비키니를 입고 활짝 웃는 서양 여자와 호텔 수건으로 몸을 어색하게 가린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묘한 대조를 보여준다.

다시 카약을 타고 강을 내려온다. 물살이 적당하여 카약은 속도를 낼 수도 있고 유유자적하게 풍경을 음미하며 내려올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경기용 카약을 한번 타 보았다고 뻐기면서 속력을 내어 타고 내려온다. 뻐근한 팔의 근육만큼 재미도 있다. 카약은 수상 스포츠의 왕자이다.

 

서양인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곳 중의 하나인 방비엥 이곳에 서양인의 모습이 줄어든다고 한다. 서양인의 거리가 퇴락하여 동양인 관광객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인은 그곳이 서양인의 거리라는 이유로 방문하고 서양인은 동양인의 시끄러움과 극성을 피해 오지 않는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찾아 거리의 먼지까지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빠르고 급하고 시끄럽고 무례한 동양인 단체 관광객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철수하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서양인의 문화적 수준에 접근하려 하면 그들은 또 다른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만나는 한국인은 반갑지 않다.

 

항상 2% 부족한 사진 욕심을 채우려 현지 여행사 사장과 의논하여 탐짱과 불루라군 밤부를 찾았다. 작은 조각품처럼 파란 물이 아름다운 불루라군에서 편안함과 조용함을 느낀다. 밤부는 TV에 소개된 곳이다. 먼지가 안개처럼 날리는 길을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뒤차에 추월을 당하면 우리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려야 한다. 그런 먼지 가득한 거리를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이 손짓하며 인사를 한다. 아름다운 마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베트남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보고, 라오스에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라오스 사람들은 감성적이고 순수하다. 라오스의 시골에도 문 입구에 제주도처럼 3개의 장대를 걸어 둔다. 잠시와 조금 반나절과 하루 이상의 집을 비운다는 표시이다. 길가에서 아름다운 무늬의 천을 짜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목에 거는 천도 샀다. 순진하고 부끄러워하는 아주머니에게 감히 에누리는 말도 못 꺼냈다. 또 이상한 사각 전주는 뱀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지혜로, 일반 집도 사각기둥 위에 세워진 이층집이 많다. 습기와 해충을 막기 위함이다. 수도 근처에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는데 여기의 소금물은 지하 35미터에서 퍼 올려 장작을 때거나 햇볕에 말린 천일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장작이 소금보다 비싼 것 같았다.

 

 

 

 

 

 

 

라오스 여행에서 아름다운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시간이 멈춘 라오스, 특별함 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라오스에 사는 아이들의 천진하고 사랑스럽고 순순한 눈동자를 보았다. 걸친 의복은 남루해도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행복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보아도 반갑게 웃고 조금만 웃기게 하면 웃음이 온 얼굴에 가득 퍼지는 신의 축복 같은 아름다움이 퍼져 나온다.

 

오래된 것들이 가지는 순수, 그 순수의 가치를 찾아 그 내밀한 사연을 들으려 책장을 뒤로 넘기듯 카메라의 렌즈를 만지작거린다. 풍경은 마음에 담아 가슴에 남겨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기록으로 대체하려 한다. 사람이 살아가고 살아왔고, 사람이 사랑하고 정을 나누는데 나그네는 그 삶을 곁눈질하면서 어떻게 사는가?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교환비율을 어떠한가? 하고 살피려 든다. 우리는 지나치게 똑똑해서 진정함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시간이 많으면 시간을 허비하면서 시간을 아까워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것이 사진이 하는 작업이다. 잊혀버린 시간을 일깨워 주는 것도 사진이 하는 일이다.

문명이 진화를 포기한 순간,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에 멈춘 라오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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